2018년 3월 24일 토요일

1. 당신에게 철학함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당신에게 철학함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오래 전부터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동시대인들과, 세계와 인간에 대한 인문학적 고민을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 기회가 쉽게 오지 않았습니다. 학업에 전념하는 동안 인문학을 파고 들었고,  학업 후 목회에 전념하며 신앙과 계시 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계시와 이성의 이분법은 모순이라는 사실을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사소한 것으로부터 가장 심오한 것을 다루는 철학의 분야에서 어느 한 사람이 모든 진리(?)를 다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나는 이제 매주 시간 나는 대로, 조금씩 철학의 흐름을 끌어내어, 그것을 적용하는 방식을 놓고 여러분과 함께 고민하고 성찰하는 방식으로 이해를 나누고 싶습니다. 공감함으로 우리는 유한한 피조물의 아픔을 서로 나누고 세계와 인간의 문제를 함께 풀어나가는 정의와 자유, 덕의 문제에 좀 더 가까이 접근하는 것이라고 이해하고 싶습니다.

오늘의 첫 번째 주제는 철학의 가장 기본적인 주제입니다. 계시와 이성을 둘로 나누어 생각하는 이분법입니다.


1. 간략한 철학사


[철학 Philosophy]어원적으로 [지혜 sophy][사랑 philo]의 합성어, [지혜에 대한 사랑]이란 의미입니다.



 여기서 [지혜][다차원적 종합적 사고]를 의미하며, 그것의 반대어는 [일면적 편향적 사고] 입니다.


 옥스포드 영어사전에 따르면, 철학진리와 실재를 찾는 데 있어서 이성과 논증의 사용특히 사물의 원인과 본성실존, 물질적 우주를 지배하는 원리들, 그리고 물리적 현상과 인간 행동에 대한 지각으로 정의를 내릴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철학은 사실 즐거운 학문이 아닙니다. 철학이 제시한 가정을 통한 진리에 대한 끊임없는 의문은 많은 사람들을 괴롭힙니다철학자들은 스스로 먼지를 일으키고 앞을 볼 수 없다고 불평합니다.


 철학을 최초로 사용한 사람은 소크라테스 이전의 [헤라클레이토스][헤로도토스] 였습니다.

 그러나 이 말을 심사숙고하여 특수하고 제한된 의미에서 사용한 최초의 사람은 소크라테스 이후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였습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철학은 무엇보다도 사물의 궁극적 원리를 추구하는 이론적(사변적) 작업이었습니다.

 그 후 [스토아 학파][에피쿠로스 학파]는 철학에 대해, [이론적 과제] 뿐 아니라 [실천적 의의] 부여하였습니다.

 이들은 철학을 삶의 지혜, 삶을 올바르게 영위하기 위한 지식으로 간주하였습니다.

[에피쿠로스]는 반종교적 경향 (무신론), 인간이 철학적 지식을 통해서 신과 죽음에 대한 공포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는 생각과 밀접히 연관을 맺었습니다.



 기독교의 지배 하에 있던 중세에, 신학은 곧 철학이었습니다.

 그 이전 시기의 교부철학은 철학에 대한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습니다.

 반면에 중세의 스콜라 철학, 특히 토마스주의는 신학의 우위를 인정하는 범위 안에서 신학과 (전통적) 철학의 화해를 시도했습니다.


신흥 부르주아지의 [이데올로그]들은 고대의 철학적 전통으로 되돌아가, 중세의 봉건적 교권 이데올로기와 투쟁하는 과정에서 다시 철학에 자립적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베이컨, 데카르트에서 헤겔, 포이어바흐에 이르기까지의 [고전적 부르주아 철학]은 전체적으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 즉 철학이란 [여러 사물의 보편적인 것], 본질, 법칙성과 관계한다는 견해를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했습니다.



[고전적 부르주아 철학자]들[스토아 학파][에피쿠로스 학파]가 전개했던 철학의 실천적 의의에 대한 주장을 수용했습니다. 그들은 자연과학 탐구를 통해 실천적으로 검증할 수 있거나, 사회적 실천을 통해 확증되는 철학의 형태를 발전시키고자 했습니다.


 특히 근대 부르주아지의 <유물론 철학>은 철학적 인식의 사회적 실천적 검증을 철학의 기본 과제 중의 하나로 천명하였습니다. (유물론, 계몽주의)



 이처럼 철학의 실천적 의의를 통찰하였던 고전적 부르주아 철학자들은 자신의 철학을 [세계관]으로 확립하고자 하였습니다. 그것은 점차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반종교적 세계관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철학이 전개되기 시작한 이래로 두 가지 근본적인 입장, 물론 철학과 관념론 철학(관념론, 종교)이 역사적으로 형성되어 왔습니다

 물질 (자연, 존재)과 의식 (정신, 사유)의 관계에 대한 문제에 대해 어떻게 답하느냐에 따라, 철학은 유물론과 관념론이라는 두 개의 대립된 기본 입장으로 나뉩니다.


 이 두 가지 근본 입장의 대결은 광범위하게 철학사의 전개과정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철학적 입장, 체계, 견해를 이 두 가지 근본 입장으로 환원시킬 수 있습니다.

 플라톤철학은 경이에서 시작된다고 진술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이 자신의 죽음을 의식하면서 산다는 사실이 철학을 하도록 한다고 정의했습니다.

 칸트철학은 자기 계몽이다. 계몽이란 자기자신에서 연유하는 미성숙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이다. 미성숙이란 다른 사람의 지도 없이는 자신의 지성을 사용할 수 없는 무능력을 말한다고 주장했습니다.



2. 계시와 이성의 이분법


 이 세상에는 궁극적 문제를 다루는 두 종류의 글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이성에 관한 글로써 개인이나 인간이 최선의 진리와 선을 발견하도록 도와주는 책들입니다. (플라톤, 토마스 홉스

 또 하나의 글은 계시에 관한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능력에 의지하지 않고 초자연적인 기적을 통해 진리와 선에 대한 지식을 전달한 것입니다. (성서)

 예를 들어, 구약성서는 이 이성과 계시의 이분법이 생겨나기 5백 년 전에 쓰여졌습니다. 구약성서는 이분법의 모판이라 할 수 있는 그리스어와 완전히 다른 언어로 쓰여졌습니다. 구약 시대의 예언자와 학자들은 이 이분법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구약성서의 주제는 크게 1) 박해와 실패로 고난 당한 이들의 성찰 2) 인간 본성에 대한 고찰, 그리고 3) 리와 선에 대한 탐구 등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것은 고전적 철학과 동일하게 이 세상의 영역을 넘어 실재의 본질에 도달하려는 노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몇 가지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구약성서가 이성과 아무 관련이 없는 계시의 책이라면, 왜 구약을 연구하는데 해석학의 틀이 남아있는가? 그리고 왜 구약을 계시의 산물로만 여기고 인간의 합리적 이해를 증진시키는 책으로 이해하지 못하는가? 또한 구약의 기록은 단지 받아쓰기일까?


 실제로 구약의 많은 곳에서 아래와 같은 계시의 표현들이 등장합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이사야, 예레미야)


3. 이성은 계시와 본질적으로 대립하는가?


 파르메니데스(Parmenides, 기원전 510~415 )는 이태리 남부 엘레아를 근거지로 활동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로서 이스라엘의 예언자 예레미야(기원전 647-572)보다 약 130년 뒤에 출생해서 활동했습니다. 플라톤(기원전 428-348)의 대화편에서 어떤 사람은 그를 아버지로 불렀고, 오늘날 현대철학사에서도 그는 자주 거론되는 유명한 인물입니다. 그는 존재의 본성에 대한 연구로 유명해졌고, 모든 진리의 근본은 이성이라고 주장하며 이성에 의해서 생각할 수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놀랍게도 자신의 철학이 사실은 신의 계시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신이자신을 가르치고, 감동을 주고, 철학을 허락했다 주장했습니다.

 시칠리아 출신인 고대 그리스 다원주의 철학자 엠페도클레스 (Empedocles, 기원전 490~430)는 세상의 모든 만물은 바람···흙의 4개 원소로 만들어져, 이것들이 서로 분리되고 결합하면서 만물이 생성하거나 소멸된다는 우주론적 이론을 창안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뜻밖에 자신의 철학이 칼리오페이아 여신에 의존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터키 에페소스 출신의 페르샤 이오니아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 (Heraclitus, 기원전 535~475)형이상학, 인식론, 윤리, 정치, 우주론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그런데 그는지혜는 하나뿐이다. 그는 제우스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불리지 않기도 한다. 성인이 아이보다 지혜롭듯이 신은 인간보다 지혜롭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표현은 플라톤의 작품에 인용되었습니다.


 소크라테스 (Socrates, 기원전 469~399)는 스스로 철학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없는 특이한 철학자입니다. 화이트헤드 "서양의 모든 철학은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 고 했는데,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제자였습니다


 플라톤소크라테스가 철학에서 발생하는 문제의 답을 신의 직접 명령이나 예언과 꿈, 그 밖의 다른 계시를 통해서 기록했다고 진술했습니다.


 이로써 소크라테스 이전의 잘 알려진 몇몇 고대철학신이 직접 주신 지혜를 다룬 학문이었다는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그들의 철학은, 구약성서의 신이 예언자를 통해서 내린 신탁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들도 신의 감동으로 지혜를 받았습니다.

 버틀란드 러셀(1872~1970)은 그의 저서 서양철학사에서. “소크라테스가 신의 예언, 목소리, 꿈의 인도를 받아 철학을 썼다고 진술했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대부분의 철학자들계시의 역할을 완전히 무시하거나, 지나가듯 간단히 언급하는데 그쳤습니다.




4.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계시를 오늘날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파리메니데스신들이 끄는 수레에 올라타 하늘로 오른 후, 여신으로부터 직접 영접을 받고 계명을 받았다고 적은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그래서 그가 인류에게 진리를 전달하기 위해서 여신의 말과 환상들을 기록했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의 신적계시에 대한 언급은 오늘의 관점에서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요? 문학적 관습? 은유적 표현? 지식의 통찰?

 파르메니데스의 철학, 여신에 의한 계시의 형식을 가졌다는 이유로 그동안 무시 당했을까요? 대답은 아니오 입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과, 성서를 다르게 대하고 있을까요?

오늘날 성서가 철학과 차별 받는 이유, 다음의 전제 때문입니다. 그리스의 지혜는 이성에서 나오고, 유대인의 지혜는 계시에 의한 것이라는 판단 때문입니다.

이분법은 선험적인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 이것은 조사나 탐구 없이 바로 옳거나 그른 것으로 적용되었습니다.


 파르메니데스의 환상그리스의 지혜이므로 이성의 산물이고, 예레미야의 저작은 유대적 산물이니까 계시의 산물로 쉽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단지 선험적 분류 기준에 따라, 파르메니데스의 저작에서 합리적인 것을 찾으려고 노력했고, 예레미야의 저작에서는 계시적 요소만 찾으려고 했습니다.

 합리성을 기준으로 구약의 예언자를 바라보면 그들도 파르메니데스 못지않게 합리성과 논증을 제시합니다.



 이성과 계시를 이분법으로 나눈 의도에는 기독교의 책임이 큽니다. 근대 이후에도 기독교는 계시의 산물이 한낱 이성의 산물보다 훨씬 우월함을 강조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18세기 말의 계몽주의 철학이 등장하면서 기독교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리모델링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독일에서는 고대 그리스를초인으로 간주하고 당대 독일인이 배워야 할 인류의 모델로 추켜세웠습니다.

 빌헬름 훔볼트 (1767~1835)계시에 대한 잣대를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적용하면 안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인들에게서 그들이 실현하고 싶은 이상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훔볼트는 참된 건강, 생명, 공동체, 자유, 신성함이 모두 그리스인들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오직 그리스인 가운데 이상형을 찾, 오직 그리스인으로부터 영감을 얻고, 그리스인을 유일한 학문과 지식의 원천으로 격상하는 것이 독일인의 과제가 되었습니다.

 그 때로부터 유럽의 역사와 사상에서 계시적인 모든 것이 유해하거나 불필요한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계몽주의 철학자들계시와 관련된 문서를 무지나 미신과 연결해서 생각했습니다. 사상사에 중요한 기여를 한 저서 중에 계시적인 것이 전혀 없게 되었습니다.

 칸트는 서양의 사상사를 언급하며 구약성서를 아예 배제했습니다. 헤겔은 오직 그리스인과 게르만인 만이 사상을 소유해왔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같은 이성과 계시의 이분법이 가져온 파장은 무척 컸습니다.

 1810년부터 독일의 대학들은 훔볼트의 리더십 아래 기독교 계시가 아닌 자연과학을 중심으로 새롭게 개편되었습니다. 이후 자연과학과 수학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업적을 이루었습니다.

 그들은 역사학과 종교학과 과학을 하나로 정립했습니다. 독일대학은 수학, 물리학, 생물학, 의학 등에서 학문적 업적의 세계적 중심지로 떠올랐습니다. 한 세기 전에 미국대학들이 이 독일 대학을 모델로 미국 대학의 개혁을 이끌었습니다.

 그때 도입된 것이 서양사상사에 대한 계몽주의적 이해 였습니다


 전통적인 서양사상의 이해 (조지 홀랜드 사빈),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 그리스와 로마의 철학학파, 신약성서와 아우구스티누스 등의 교부, 토마스 아퀴나스같은 중세사상가, 마키아벨리-홉스-루소-로크 (근대 초기 철학자들), 그리고 칸트-헤겔-마르크스-니체 (독일사상가들)의 순서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수정주의 역사가들도 같은 견해였습니다.



 계몽주의 시대 이후 독일인들은 성서에 대한 연구를 과학으로 바꾸려 했습니다. 그들은 또한 그리스인들이에 가까운 사람들이고, 서양인들(특히 독일인들)이 그리스인의 후손임을 증명하려고 했습니다.

5. 결론


 오늘 논의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파르메니데스시대의 창조적 사상가로 대접 받을 때, 예레미야의 저작이 비이성적이라고 차별 받을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Пророк Иеремия, Микеланжело Буонаротти.jpg





1. 당신에게 철학함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당신에게 철학함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   오래 전부터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동시대인들과 , 세계와 인간에 대한 인문학적 고민을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 그러나 그 기회가 쉽게 오지 않았습니다 . ...